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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생각없이 한시간은 쳐다봐도 블로그에 글 쓸 시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글쓰기 절름발이 데레기의 블로그 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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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완전하다.


"완벽한 인간. 완벽한 사람이 되고싶다."

서른 하나 삶을 살면서, 그간 가장 내 인생을 오래 지배한 관념이지 않을까.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할 때 까지, '완벽해'지는 것이 내 목표였다.


엄밀히는 중간고사에서 올 100점을 맞는것이 완벽했다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나만의 기준으로 그 완벽함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기준은 아마 원만하게 모든사람의 호감을, 인정을 살 수 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외동이 아닌, 형제가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밖으로 보여지고 평가받는 나의 모습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으로 나는 살아오고 성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머리가 굵어졌을 때, 꼭 4륜자동차에 바퀴 3개 달린 것 처럼 살아왔던 네 인생에

남은 바퀴 하나를 끼워버린 일이 있었다고 할까...


반쪽짜리 사고를 해왔는데, '너 이생각은 왜 못하니' 라고 누군가 답을 줬다고 할까..

'후회가 싫다. 후회 없는 완벽한 선택을 완벽한 삶을 살고 싶다'라는 강박인 줄도 모르는 강박과 생각 속에 살아왔는데,


기회비용 을 배우고도 시험에서만 맞춘 탓인지, 후회가 없는 선택은 없다는 것을 왜 생각치 못했을까.

후회가 적을 대안을 찾아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스무살 내 싸이월드 '비밀이야' 에 그 메시지를 남겨둔 친구와 그 장면이 아직 뇌리에 남는다.


그시절 싸이월드는 밤 10시면 서버 부하로 접속도 잘 안되었다.




그리고, 시류와 시선과 시간에 휩쓸려, . 난 서른하나가 되었고.

남과 싸우는 시간보다 내 스스로와 싸우는 시간이 더 많고 길어진, 꼰대입문과정에 들어선 평범한 생물체로 성장했다.




난 공돌이다.

전자 공학을 전공했고.

전자회로와 전자기학을 A+도 아닌 A0 를 받았다.

난 문돌이 성향을 가진, 공돌이었다.

숫자보단 글자와 친했고, 인정하긴 싫지만 고등학교 문학교과서를 읽으며 혼자 설레하는 미친 문학담당 담임선생의 발언을 이해 못하는것은 아니었다.

난 문돌이 성향이 강한, 이과생이었다.

내 성향과 능력을 이해하고 문과에 갔다면 컴플렉스 덩어리가 되었을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놓고 보았을땐, 열여섯 일곱나이에 언어와 수리로 인간을 이분법 재는 것은 (예체능및 특수계열 제쳐두고) 참 아쉬운 방법이지 싶다.


주체적인 생각도 없는 나이에 수학이 싫어 혹은 문학이 영어가 싫어 정한 선택하나에 제도와 사회현상적 불합리와 편중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해놓았으니 말이다. 문송해서 되겠는가...


대학을 다니면서도 내가 흥미롭게 들었던 과목들은, 대부분 철학/논리, 역사문화의 교양과목들이었다.

공부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흥미를 같는 것은 역시 다르기에, 성적은 말 할수 없지만,

교양학부를 사랑했던 나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배경엔 독서가 있다.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라는 책을 읽다가, 한 구절에 꼳혀 글을 쓰고 있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 라는 표현에서 큰 공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고 할까.


공학과 윤리 윤원형교수의 수업을 들었을 당시 (까먹지도 않아)

그분은 실제 공학과윤리 커리큘럼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보기엔.


그냥 자기 좋은것 가르치고 싶어 하던 분이셨는데...



그분이 했던 얘기중에 가장 순진했던 나에게 재밌었던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소크라테스? 플라톤인가?



그 지역에서 논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일인자, 소크라테스가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고 싶으나 돈이 없었던 그는

나중에 소크라테스로 부터 가르침을 받은 후, 최고의 변호사가 되어(그 시절은 논리왕이 변호사) 첫 수임업무에 승소하게 되었을 때, 밀린 학비를 갚겠노라는 조건으로 소크라테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정말 한푼 학비가 아쉬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졸업하여 변호사로써 일을 해야할 그 제자가 당최 일 할 생각은 없고 공부에만 매진, 소크라테스를 외면하자

소크라테스는 그 제자를 고소 했다고 한다.


"나와의 채무관계를 해소할 약조를 이행하지 않고 변호사로서 일을 하고 있지 않다"

제자에게 소송을 건 소크라테스, 재판에서 제자가 질 경우, 판결로 인해 그간 내지 않은 학비를 내야 할것이요,

재판에서 이길 경우 첫 재판에서 이겼기에, 약조에 따라 스승에게 학비를 되갚아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제자는 이와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재판에서 이길 경우, 판결에 따라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내가 재판에서 질 경우, 아직 최고의 변호사가 되지도 않았으며 재판도 승소하지 못했기에,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일을 놓고 서로 자기얘기만 하고있는 둘.

언어적 한계에 갇힌다는 것을 이럴때 쓰는 말 일듯 하다.


결론적으로 재판은 스승이 이겼다고 한다. 하지만 제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이 재밌다.

해당 재판을 진행하는 재판부 마저 그 재판을 받는 스승과 제자보다 뛰어나지 못한 탓에 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고,,,

하지만 재판을 구경하고 있던 한 사람의 말에 의해 스승이 승소했다고 한다.


'제자는 재판에서 승소하지 못했기에 돈을 지불할 의무가 없으며, 이러한 판결을 내릴 수있는 내가 저 제자보다 더 뛰어난 변호사이니 제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요즘표현을 빌리자면 말은되나 말이 안되는 아무말 대잔치라고 말 할수도 있겠다.


어린 내겐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이러한 논리의 전개들이,  다들 자기 유리한 얘기만 하고 해석하니

정답이 나올 수 없는것.

이게 우리 현실 삶과 다를것이 하나 없다는 것,







Posted by 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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